음성군의 '참 기업'을 찾아서

37번 국도 옛 도로를 타고 감우재에서 소여리 방향으로 약 500m 정도 내려오다 보면 왼 쪽으로 천 개가 넘는 항아리가 나열돼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전경으로 3년 전 이 곳에 자리잡은 전통 옹기 제조업체 ‘하영옹기’가 생산한 옹기들이 펼치는 그림이다.
전통옹기는 우리 선조들의 과학적 우수성을 확인 할 수 있는 수 많은 물품(ITEM) 중 하나로 현대기술에 의해 그 과학적 근거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IMF 한파의 시련
강원도 횡성군 둔내가 고향인 하영옹기의 정성교 대표는 둔내면에 국가 시책으로 대단위 종축장(현 축산기술연구소)이 들어서면서 고향 땅이 수용돼 강제이주 당하면서 실향민이 되는 남다른 과거를 소유하고 있다.
이후 정 대표는 “서울 생활을 거쳐 청주에서 벌이던 사업이 IMF로 무일푼이 되고 생계 수단으로 5톤 화물차를 운전했으나 월 급여 120만 원과 아내의 부업 수입 월 80만원을 합해도 부채의 이자 월 230만 원에 30만원이 모자라 밤에 파지를 주워 근근이 생활했다”고 한다.
한정된 수입으로는 또 다른 부채를 얻어 부채를 갚는 돌려막기가 지속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던 터에 지인의 ‘항아리를 팔아보지 않겠냐’는 권유에 무리를 해서 백만 원짜리 중고 1톤 트럭을 구입해서 항아리 장사를 시작한다.
정 대표는 항아리 장사를 하던 중에 한 노인의 “젊은 사람이 좋은 항아리를 팔지 왜 이런 항아리를 파느냐”는 질책을 듣고 “전국을 수소문해서 전통옹기 제조공장을 찾았으나 기존에 공급받던 항아리에 비해 가격이 세 배나 비싼 탓에 판매할 자신이 서질 않았다”고 한다.
정 대표는 수소문 과정에서 ‘항아리가 장의 품질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임을 깨닫고 “이왕이면 좋은 항아리를 합리적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계약금 없이 자신이 주문하는 품질의 항아리를 하청생산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아내 전통옹기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통된장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된장공장과의 거래가 늘어나고 주문량이 늘어났으나 하청생산을 하던 공장에서 된장공장에 직접 납품하고 정 대표와의 거래를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장호원에서 경영난을 겪던 공장을 헐값에 인수해서 본격적으로 직접 옹기생산에 뛰어들게 됐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7천만 원의 적자를 볼 정도로 어려웠으나 현재 하영옹기에서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이광섭 옹기대장을 만나면서 위기를 넘기고 새로운 공장부지로 물색해서 옮긴 곳이 소여리의 현재 공장이다.

전통양식을 고집하는 옹기장

현재 하영옹기의 정기적인 거래처의 연 매출액은 3억 원으로, 재료비' 인건비, 관리비를 간신히 충당할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간간이 판매되는 소매 매출액의 이윤으로 정 대표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매출규모가 생산설비를 100% 가동할 수 있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정 대표의 ‘제대로 된 옹기를 만들겠다’는 고집스런 장인정신과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일을 하자’는 사업철학 때문이다.
정 대표는 하영옹기의 품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중간 도매상들에게도 옹기를 팔지 않는다.
그는 “1,210-1,220℃의 소성온도와 잿물유약만을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하영옹기의 옹기는 공명단유약을 발라 저온소성한(납성분을 포함한 유약) 옹기에 비해 제조 원가가 높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려면 중간도매상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너무 판매와 매출확대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품질이 저하될 것을 우려한 이유도 있다”는 것을 두 번째 이유로 들었다.
정 대표는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은 기업가 정신이 아니다’라는 또 다른 사업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항아리를 생산하는 업체에 관해서는 일체의 평가를 거부하고 “소비자가 다양한 품질의 항아리를 원하 듯 생산자도 그에 맞춰서 다양한 품질의 항아리를 생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나와 우리 직원들이 생산하는 전통방식의 옹기를 찾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는 전통옹기사업을 지속할 생각이며 현재도 어려운 여건이지만 이익에 연연해 무리하게 생산량을 늘리고 싶지는 않다”고 서둘러 매출을 늘리지 않는 배경을 전했다.

전통발효식초협회와의 인연

이러한 이유로 그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흔히 바이럴마케팅의 홍보수단으로 운영하는 블로그도 운영하지 않는다. 자신의 옹기만 부각되면 다른 생산자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오히려 “우리 옹기의 품질을 칭찬하는 글을 올린 다른 사람 블로그의 글을 삭제하도록 정중히 부탁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하영에서 생산하는 옹기는 ‘한국전통식초생산자협회’의 공식 저장용기로 지정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품질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초산이 물질을 부식시키는 작용이 있는 식초는 가장 까다로운 저장용기의 조건을 요구하는 발효식품이기 때문이다.
2년여 동안 전통식초를 제대로 발효시킬 수 있는 옹기를 찾아 전국을 찾아 헤매던 전통발효식초협회는 하영옹기의 생산과정과 품질을 확인하고 지난 해 5월 MOU를 체결해 협회의 공식 저장용기로 지정했다.
정 대표는 전통발효식초협회와 연을 맺게 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처음 협회 관계자가 심혈을 기울여 생산한 샘플을 납품하자 그 관계자는 다짜고짜 샘플을 깨뜨려 옹기의 단면부터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1,210-1,220℃에서 제대로 고르게 구워졌는지 여부를 깨어진 단면에서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된장, 효소, 식초 등의 발효식품들의 저장 용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통기성과 밀폐성이다.
발효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외부의 산소공급이 원활해야 하기 때문에 저장용기는 다공성이여만 한다. 소위 ‘숨을 쉬는 항아리’가 필요한 것이다. 통기가 이뤄지지 않는 저장용기 속에서의 내용물은 발효가 아닌 부패가 진행된다.
두 번 째는 대부분의 발효식품이 액상상태이므로 방수기능은 필수적이다. 특히 소금물로 담그는 장류의 나트륨과 염소, 그리고 식초 등 발효식품의 초산 또한 이온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온입자는 분자의 크기보다 작기 때문에 옹기의 기공이 아주 미세해야만 새지 않는다. 물이 새지 않던 장독에 간장을 넣으면 새는 이유 가 그 예다.
일반 섬유에 비해 고가로 판매되는 고 기능성 섬유 ‘고어텍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를 위해 정 대표는 잿물(회유)의 원료로 충주 엄정면과 강원도 평창면 일대의 농가의 아궁이에서 잡목이나 공사목이 섞이지 않은 완전연소된 소나무와 참나무 재를 직접 조달하고 1,210-1,220℃의 소성온도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음성군 기업유치의 표본
‘밀폐’와 ‘통기’ 두 이율배반적인 조건의 미세한 경계를 찾는 정밀한 작업인 전통옹기를 만드는 일을 하영옹기가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 대표에 따르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전통옹기를 제작기술을 보유한 옹기장은 현재 전국적으로 세 명 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이 오늘의 하영옹기를 있게 한 이광섭 옹기장이다.
이 옹기장은 올해 72세로 16세부터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34세의 젊은 나이로 끊어져 가는 전통옹기 명맥을 잇기 위해 이광섭 옹기장으로부터 전통방식을 전수 받고 있는 장규영 후계자도 하영옹기를 떠받치고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정 대표는 이 두 사람을 비롯한 4명의 직원들이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취사시설이 완비된 기숙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PC방 운영계획을 ‘좀 더 남을 이롭게 하는 사업을 구상해 보라’는 충고로 철회시키고, “제대로 된 옹기를 만들어 파는 일은 옹기를 사가는 사람들에게 건강을 파는 일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망한다고 해도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정 대표와 하영옹기야 말로 비록 외형적인 규모는 작지만 음성군이 유치해야 할 기업가와 기업의 표본이라고 하겠다.

공덕환 기자 estim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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